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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ュース・プレスリリース

언제나 건강 2011년 6월 겐키스페셜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처가 남은 지역에서의 대분투

다시 일어서기 위한 한걸음 내딛기
- 미야기 와카바야시클리닉 / 와카바야시 건강 친우회 (토모노카이)

“ 대참사의 영향으로 <언제나 건강:이츠데모 겐키> 판매소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는 와카바야시 클리닉 쪽으로 보내주길 바란다.”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직후,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와카바야시 건강 토모노카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4월 중순, 클리닉을 방문했다.

지진 직후 동료들의 안부확인을 위해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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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방문활동을 하는 와카바야시 클리닉 간호부장 쿄 레이코 씨(오른쪽). 가운데는 미야기 후생협회의 미토베 히데토시 이사장.

기다려 준 사람들은, 토모노카이 부회장 오토모 무츠오 씨와, 사무국장인 사토 마치코 씨. 오토모 씨는 대지진 때, 자택에 있있습니다. 흔들림이 멈추자 바로 머리에 떠오른 것이 토모노카이의 동료들. “고령의 독거노인이나 걱정되는 세대를 돌아보니, 클리닉 건물 주변까지 오게 된 거죠.” 그때, 해안 저쪽에서 급속히 몰려오는, 검은 벽과 같은 쓰나미를 목격. 해안 가까이 있는 집은 쓰나미에 빨려들어갔습니다. 다행히도 자택에 있던 부인은 무사했습니다. “집 2층에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날 헬리콥터에 구조되었다”고 말하는 오토모 씨.
방조림 나무가 뿌리째 뽑혀 집을 찌르듯 덮쳤고,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피난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절실히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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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씨

오토모 씨의 이웃에 사는 사토 씨는, 외출한 곳에서 지진을 겪었습니다. 일단 자택에 돌아가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쓰나미가 온다”는 알림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난하라고 소리쳐 알리면서 자신도 차로 달렸습니다.
사토 씨는 7인 가족으로, 피난소에서 가족 전원이 무사히 재회할 수 있었는데, 올해 1월에 갓 태어난 손자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는 이의 집에 몸을 기대어 이겨내고, 1주일 후부터는 빌린 집으로 옮겨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인의 집에서 지낼 때, “ ‘아기가 있어서 힘드시겠다’면서 지진 당일 밤부터 4일간 계속해서 식료품과 기저기를 가져다 준 분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 사는 분이 아니었는데, 내가 이전에 권해서 토모노카이 회원이 되신 분이었습니다”는 사토 씨.
“ 또 ‘아기 목욕시키러 데리고 오셔도 돼요’ 하는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이사할 때는 세탁기부터 냉장고, 식기까지 주변 분들에게서 다 받았어요. 이렇게까지 주변 분들의 인정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절실한 심정으로 말합니다.

클리닉 앞에서 진료를 기나리는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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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씨

거대 지진으로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걱정되는 환자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고 말하는 클리닉의 가토 다카오 사무국장. 지진 직후 ‘요 개호도 5’인 90대 남성을 딸이 개호하고 있는 왕진가정 등, “분담해서 상태를 보러 가자”고 직원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차를 몰려고 하는 순간, 가까운 주민들이 “쓰나미가 온다”며 말렸습니다. 그래서 “끌려가다시피 가까운 초등학교에 피난했다”고 합니다.
쓰나미는 클리닉 주차장에서 멈추었습니다. 건물은 침수를 면했지만, 지진으로 챠트가 어지럽게 흐트러지고, 정전으로 컴퓨터도 사용할 수 없었던 그때ㅤ,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가토 사무장.
그러나 그 다음 주 월요일에는, 클리닉 앞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이건 진료실을 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생각, 지진으로 흩어진 서류더미 속에서 빼낸 약 처방전에 의지해, 진료를 재개했습니다.
‘잠을 잘 수가 없다’ ‘혈압이 높다’는 증상만이 아니라, 지진과 쓰나미의 공포, 가족과 지인을 잃은 아픔 등이 복받쳐오르는 사람들. 진료한 환자들의 수는 3월 14일에서 19일까지 163명. 한 사람 한 사람 시간을 들여 정중히 이야기를 듣고, 피해자의 심신을 지탱해나갔습니다.

부흥운동에 앞장서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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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흔이 지금도 남아 있는 거리의 모습

진료소 주변에는 500명 정도의 토모노카이 회원이 있습니다. 피난소 등을 돌며 안부확인 작업을 했지만, 상세한 피해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지금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인지 등을 듣고 파악하는 조사용지를 만들고,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준비를 진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토모노카이 뉴스를 배포하는 루트를 이용해서, 회원 한사람 한사람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토모노카이가 지진재난으로부터 다시 재건을 위해 일어설 수 있는 운동에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오토모 씨는 힘주어 말합니다.
나아가, 행정에 대해서도 “재건의 비전을 대략적으로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같은 곳에 집을 지어도 되는지조차 판단하기 힘들다. 안전한 장소에 집단이동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활보장과 고용보장도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는 오토모 씨. 지진재해의 영향으로 남편이 3월 말로 회사에서 해고 당한 사토 씨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전가옥 방문으로 피해의 실태를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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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민의련직원이 피해지에 달려가, 지역방문과 건강상담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4월 14일, 전국 민의련의 지원을 받아, 클리닉 주변 지역의 가옥 전호에 대한 방문활동이 거행되었습니다. 클리닉 간호부장 쿄 레이코 씨도 참가했습니다.
쿄 씨가 간 지역은, 거의 집 바닥이 침수된 곳 “자동차 4대가 모두 쓸모 없게 되었다” “바닥에 (쓰나미로 몰려 쌓인) 흙덩이가 쌓여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외에, 어느 직공은 집에서는 “기기와 기구들이 모두 해수 때문에 녹슬어 일하기가 곤란한 상황이다”라며, 피해의 실태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또한 농가가 많은 지역에서도 농기구들이 해수를 뒤집어 썼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논과 밭. 해수침해로 작물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뭐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고 말하는 남성도 만났습니다.
“대지진 때 도쿄에서 돌아오는 신칸센에 타고 있었다”는 여성과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월 10일이 역사적으로 ‘도쿄대공습’이 있던 날이잖아요. 공습 때 가족을 잃은 현재 85세의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도쿄로 참배를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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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사무장

며칠 후에 도착한 집은, 마루밑 침수로 진흙더미가 쌓이고, 가전제품들은 모두 쓸 수 없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린 그나마 다행인 상태가 아니겠는가”며 다른 피해자들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클리닉과 같은 ‘미야기 후생협회’에 소속한 나가마치병원의 토모노카이 회원. 앞서 언급된 사토 씨와는 ‘우타고에(합창단)’ 동료입니다.
“다시 합창단 활동을 하자고 사토 씨에게 전해주세요. 이럴 때일수록 힘찬 기획이나 회합 행사 같은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대참사로부터 1개월이 지나면서, “’그러고 보니 안 오시네’ 하는 환자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자들의 안부 확인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지적하는 클리닉의 가토 사무장.
재건의 노랫소리(합창)이 울려 퍼지는 날은 언제일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재건의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날까지, 토모노카이 회원 분들과 민의련 직원들의 분투가 계속될 것입니다.

(글 / 다케다 츠토무, 사진 /고미 아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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