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건강 2010년 9월 민의련강령 실천의 현장을 가다 !! 지역의 [의.식.주]를 지탱하는 “와이가야” 만들기 (* 와이가야는‘자기집’이란 뜻의 니이가타 지역말임) – 니이가타현, 나가오카의료생협
생명과 건강, 인권을 지켜내고자 민의련이 분투하는 근본에는, 강령에 내건 이념이 있습니다. 강령의 실천을 소개하는 연재. 이번 2회째는 니이가타현, <나가오카 의료생협>의 ‘지역교류공간 와이가야’만들기.
‘야마도오리(벽촌지역)의 교류공간 ‘와이가야’에 7월 5일, 지역의 노인분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족욕을 즐기며 “아, 기분 좋다~”며, 웃음이 넘쳐납니다. 바램을 담은 종이장식과, ‘칠석’ ’반짝반짝 작은별’ 등을 노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나가오카 의료생협은 ‘지역교류공간 와이가야’를 개설. 4월에는 ‘신마치’라는 곳에도 와이가야를 오픈, 합계 4곳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지진재해가 계기
와이가야 만들기의 계기가 된 것은, 2004년 10월에 일어난 니이가타현 추에츠지역의 지진. 나가오카의료생협은, 지진이 발생한 후, 전국민의련의 지원을 받아 피해자의 구조지원활동을 벌였습니다.
같은 생협의 2개 진료소도 지진의 엄습을 당했으면서도, 2주 동안 250명 피해자의 생활의 장이 되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진료소 자체가 피난소가 되어 있었다” 는 경험으로부터, 생협에서는 “피난소를 겸한 교류의 장을 만들자”고 하는 논의가 터져나왔습니다.
<야마도오리 교류공간 와이가야>가 있는 다카마치는, 피해가 컸던 지역의 하나입니다. 작고 높은 언덕 위에 지어진 주택지이지만, 오르막길 도로가 토양 그대로 무너져내려, “’표주박섬’처럼 되었다”고 말하는 같은 생협의 하가 마사토 이사장(나가오카생협 진료소 소장). 피해자는 ‘섬’에 남겨지게 되고, 부득이하게 공원에서 피난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게다가 지진재해 1~2주 후에는, 피해자에게 “인간관계가 희박해짐에 따른 장애가 발생했다” 고 전하는, 하가 이사장. 전기나 가스의 복구는 언제인지, 어디로 가면 구조지원물자를 받을 수 있는지 등, 불안이 더해지는 가운데 위궤양과 불면, 지병의 악화 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태를 목전에 놓고, “‘지역의 연결고리’ ‘이웃의 힘’이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하가 이사장.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의견도 있었지만, “지역의 모든 이들로부터 물심으로 지원을 받아 만든 진료소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며 와이가야 개설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배급서비스도 전개
“와이가야는 ‘의료 복지’ ‘식사’ ‘주거’의 의식주를 축으로, 생활지원을 한다”고 설명하는 동 생협의 츠치다 다케치요 상무이사. 모든 와이가야가 재택 개호시설과 통원 재활시설 등이 병설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2년 후에는 신마치의 와이가야에 병설하는 형태로, 노인보건시설을 완성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와이가야는 배식서비스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고령자의 삶을 지탱시켜내자”며, 월 총 2600식을 써포터의 협력을 받아 보내고 있습니다. 써포터는 60세 이상의 조합원을 중심으로 약 30명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이용하겠습니다”
지진재난의 구조지원활동을 통해 “그 동안 관계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목소리를 전해듣기도 하고, 의료생협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는 동 생협 조직부의 카이세 사나에 씨. 써포터의 한 사람인, 무라야마 코에이 씨는 “’왜 왔냐?’하던 반응이, 이제는 ‘생협분들, 잘 오셨습니다’라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피난소 방문활동 등을 거쳐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이제까지는 사람 늘리는 데만 눈이 가기 십상이었지요. 근데 지금은, 지역이 얼마나 건강해질 수 있는지, 그게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와이가야는 찻집, 노래 동아리, 식사모임, 건강한 역, 운동교실, 차를 가지고 마중과 배웅을 할 때 겸사 장까지 볼 수 있는 <장보기투어> 등, 지역의 교류와 생활을 지탱하는 장으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가오카 생협진료소 옆에 있는 시로우마루 교류공간 와이가야를 이용하는 가타기리 로쿠로 씨는 “비상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에 안심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는 사람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무라야마 씨는 “앞으로도 자원봉사의 거점으로서 와이가야를 열심히 이용하겠다”며 눈빛을 빛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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