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건강 2010년 3월 민의련 강령 – 여기에 그 힘의 비밀이 – 8
키워드: 권리로서의 사회보장 실현을 위해 싸우다
민의련의 사업소는 현재 1754개소, 7만 명을 넘는 직원들이 전국에서 의료와 개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규모는 서로 달라도, 같은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민의련 강령>입니다.
1961년에 정해진 이후 반세기를 거쳐 온 강령의 버전업을 도모하고 계획 중인 이번 기회에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민의련의 참모습을, 강령의 키워드로부터 따라가 보고자 기획한 시리즈. 최종회는 <권리로서의 사회보장 실현을 위해 싸우다 >입니다.
<노인의료비 무료제도> 시대가 있었다
― 도쿄민의련 전 회장 우치다 테츠오 의사에게 듣는다
오래 전 우리나라에도 “70세 이상 노인의료비의 창구부담이 전국에서 무료(1973~82년)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도쿄에서의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 국가의 제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고령자는 모두 의료비 무료”,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당시를 알고 있는 도쿄민의련 전 회장 우치다 테츠오 의사(현재 개호노인보건시설 히카와시타 시설장)를 방문했습니다.
계기는 노인검진 활동
“1960년대, 일본은 전후의 황폐로부터 재건하는 때였습니다만, 서민에게 있어서 의료기관을 찾는 것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 우치다 의사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합니다.
‘노인의료비 무료화’가 실현된 계기는, 당시의 ‘분쿄민의련’이 실시한 노인검진이었습니다. 1963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은, “노인은 다년에 걸쳐 사회의 진전에 기여해왔던 사람으로서 경애되고, 건전하면서 편안한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념으로,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노인건강검진을 자치단체에 의무화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고령자는 무료로 건강검진을 할 수 있다고 명기한 것입니다.
이 점에 주목한 분쿄민의련의 사업소는, 66년 처음 노인건강검진을 개시합니다. 이 경험이 보급되어, 67년에는 도쿄민의련 전체에서 검진을 실시. 도쿄도 전체에서 8만명이 노인건강검진을 받고, 그 중 1할에 해당하는 약 8천명이 민의련의 시설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의료비 부담 문제가 부상하다
우치다 의사가 시설장으로 일하고 있는 <개호노인보건시설 히카와시타>의 전신. 나가가와 병원(분쿄구)에서의 노인검진(1967년경) <도심에서 자란 30년 발전의 역사를 따라서> (도쿄보건생협) |
그렇게 되니 놀라운 결과가 밝혀졌습니다. 도쿄민의련에서 검진을 받은 사람 중에 ‘폐결핵 요치료자’가 10%, ‘심장혈관질환으로 요치료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70% 이상에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당시 아직 고령자의 건강상태는 의학적으로도 규명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도쿄민의련은 이 결과를 의학적 평가로서 정리하여 학회에도 발표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검진을 받은 이에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통지를 우편으로 발송해도, 진료를 받으러 오는 이가 너무도 적었다는 것. “이건 대체 왜 그럴까? 치료하러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의료비부담’의 문제가 크게 부상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검진단계에서 병명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당시 의료보험은 자기부담이 3~5할. 이것이 커다란 장애가 되어, 치료받지 못하는 고령자가 많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힘든 생활비를 쪼개가면서까지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여유가 없다, 피부양자라면 더더욱 가족에 눈치를 보는 것이 현실이었다”는 우치다 의사.
“노인이 되면 목숨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말이 안된다. 치료비도 공적 비용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주민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치다 의사는 “67년에 도지사선거가 있어 ‘혁신자치체를 만들자’는 기운이 높아졌을 때였습니다. ‘노인의료비를 무료로!’ 라는 소망은, ‘도쿄의 하늘을 푸른 하늘로’라고 외친 대기오염 공해반대운동과 함께 커다란 목소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도지사 선거에서 미노베 타츠키치가 당선되어, ‘미노베 혁신도정’이 탄생. 67년, 도쿄도는 전국에서 제일 앞서 노인의료비 무료화를 실현했습니다.
노인의료비 무료제도로, ‘의료기관에의 접근이 현격히 좋아졌다’는 우치다 의사. “나아가 지금처럼 재택의료, 보건사업, 재활센터 등이 확대, 발전하는 계기도 되었다. ‘노인의학’의 연구도 진전되어, 일본인의 평균수명을 크게 연장시키는 요인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권리로서의 사회보장 실현으로
그러나 1973년, 석유파동. 고도성장이 끝나고, 경제가 침체함과 동시에, ‘사회보장과 복지에 돈을 쓰는 것은 낭비다’라는 재계와 정부의 압력이 더해져, 노동조합과 혁신자치체 없애기 등의 공격을 받는 가운데에서 ‘노인의료비 무료시대’는 10년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82년 ‘노인보건법’이 성립하고, 다시 노인의료에 자기부담이 도입되게 되었습니다.
노인의료가 무료였다는 것을 모르는 세대가 늘고 있는 지금, 민의련은 ‘후기고령자 의료제도’를 폐지하고 노인의료비를 무료화하자는 방침을 내놓고 있습니다.
우치다 의사는 강령개정의 논의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노인의료비 무료제도는, 일본의 뒤쳐진 복지를 충실하게 만드는 추진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정치가 변하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시책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해 주었습니다. 역시 정치의 힘은 큽니다. ‘권리로서의 사회보장 실현’을 지향하고, 광범위한 단체와 서로 손을 잡고, 운동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헌법에 나와 있는 우리들의 권리를, <민의련강령>을 기치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차세대의 여러분들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글/ 이노구치 소우
사진/ 사카이 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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