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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ュース・プレスリリース

건강스페셜 나카무라 고로의 포토리포트 오키나와에 기지가 있는 한 검게 그을린 벽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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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헬기의 추락 흔적. 오키나와 국제대학의 교사는 검게 그을리고, 나무는 숯검정이 되었다.

시가지에 떨어진 미군헬기, 해병대가 현장제압

화상에 짓무른 교사. 늘어진 전선. 아름드리 수목이 선 채로 숯검정이 되어 있다. 마치 폭격 직후의 광경이다.
기노완시(市)의 후텐마 기지 근처 주택지에 오키나와 국제대학이 있다. 그곳에 미해병대의 헬리콥터 CH53D가 추락한 것은 8월 13일 오후 2시 넘어서였다. 추락과 동시에 불타올라 폭발.
“소리가 이상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헬기의 뒷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거예요. 기체가 이쪽을 향해 날라 와서 ‘피해-!’하고 외치면서, 건물 뒤쪽으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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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현장의 펜스에 학생자치회가 건 기지철수의 현수막

오키나와국제대학 앞에 있는 중고자동차판매점의 타마모토 가즈히코 씨(33)는, 그 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이런 기지는 철수 외엔 방법이 없다”며 분노를 토해냈다.
불가사의한 것은, 추락과 거의 동시에 해병대가 와서 현장을 제압한 점에 있다. 헬기와의 교신으로 시가지로 추락할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추락지점의 주민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경계경보을 울리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나 미군은 일본측에게는 일절 알리지 않았다. 추락지점에 있을 일본인 문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미군병사의 구출에만 분주했다. 승무원 3명은 화상을 입었으나, 즉시 구출되어 병원에 옮겨졌다.

마치 식민지의 <치외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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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완시 시가지의 정중앙에 있는 후텐마 기지(기노안시 제공), 화살표가 가리키는 장소가 오키나와 국제대학

현장 앞의 도로도 미군이 마음대로 봉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학장실도 망가졌다고 하는데도, 달려온 도쿠치 도모아키 학장도 배제되고, 일본경찰에 의한 현장검증마저도 거절당했다. 마치 19세기의 <치외법권>이다. 일본의 주권은 여기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체에서는 방사성물질 스트론치움 90이 비산하고 있다. 미군은 헬기의 잔해와, 현장의 흙을 죄다 주워담아서는 모두 가지고 사라졌다. 이후부터의 조사는 불가능. 이러한 미군측의 태도를 “군정 하와 같다”며 이하 요이치 기노안 시장은 분노했다.
이후, 8월 말에는 재일미군의 T=와스코 사령관이 “헬기승무원이 피해를 최소화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 사고에 대한 무반성과 오키나와 현민의 공포를 비웃는 듯한 발언을 일삼고 있다.

미군기지 75%가 오키나와에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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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지도

2800미터의 활주로를 보유한 후텐마 기지는 8만 7천 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기노완시의 주택지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시 면적의 1/4을 점하며, 대형운송헬기를 포함해 헬기 56대, 비행기 15대를 지니고 있다. 미국 국내라면, 주택지의 비행은 당연‘위험’으로 허가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에서는 오만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에 방일한 럼즈펠드 미국방장관마저도, 공중에서 후텐마 기지를 내려다보면서 “이런 곳에 사고가 안 나는 게 오히려 불가사의다”(마이니치신문 2월 3일자)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일년에 30000회나 비행을 반복하는 후텐마의 헬기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이래 83건의 사고를 일으켰다. 오키나와 전역에서의 대형운송헬기에 의한 사고는 193건에 달한다.
언제 어디에 무엇이 떨어질지, 거리에 나온 미군병사가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공포의 나날들을, 종전 이래 60년 동안 줄곧 등에 짊어질 것을 강요받아온 것이 바로 오키나와인 것이다. 1972년의 일본 본토 복귀 이후에도 사태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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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를 마치 자기 땅인 양 달리는 미군차량 (오키나와시에서)

후텐마 기지를 반환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게 되는 계기는 1995년에 일어난 미군병사에 의한 소녀폭행사건이었다. 그 분노를 잠재우려는 듯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수상과 클린턴 미대통령 간의 7년 이내 후텐마 기지 반환이 SACO(오키나와에 관한 일미특별위원회)에서 합의되었다. 그 대신 헤노코 앞바다를 메워서 대체기지로 한다는 것이었다. 없애는 것이 아닌 오키나와현 내에서 끈덕지게 돌리고 돌리기 식이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후텐마는 반환되지 않았다.

헤노코 바다를 지키려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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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기지 건설 저지. 헤노코에서의 연좌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긴조 씨(앞줄 왼쪽)와 농성을 지원하는 사람들.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 나하로 향하는 여객기는 바닷가를 따라 비행한다. 오키나와의 하늘이 미군 가데나 랩콘(Radar Approach Control : 레이더관제공역)에 의해 지배되어, 민간기가 비행하는 것은 고도 300에서 600미터라는 좁은 공간밖에 없다. 저공비행은 유람 서비스가 아닌, 군용기 우선관제의 결과인 것이다.
착륙이 가까워오면서 아름다운 해안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듀공이 서식한다고 하는 헤노코의 바다는 진한 에메랄드빛으로 맑기 그지없다.
생식지가 한정되어 있어, 절멸위급종으로 지정되어 있는 듀공. 새끼를 안고 모유를 먹이는 모습으로부터 인어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먹이는 헤노코 앞바다에 있는 특정한 해초뿐. 만약 그곳을 메우거나 공사를 시작하거나 하면, 그들은 먹이마당이라 할 수 있는 삶의 터전를 잃게 된다. 기지는 인간의 생명환경을 파괴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계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헤노코의 해안에서 늙은 어부가 태풍에 대비하여 배를 로프로 고정시키고 있다. “바다에 기지가 생기면 어업은 끝장이야. 물고기들은 이 해조수초들을 먹고 자란다구.”
헤노코 어항 입구의 천막집에서는 4월 19일부터 <생명을 지키는 모임>에 의해 4개월 여의 연좌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해상기지 건설 저지의 감시활동을 시작한(96년) 때부터 치면 벌써 8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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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내려다 본 헤노코곶. 에메랄드빛 바다에 듀공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을 매립해 미군헬기의 해상기지로 하려는 계획.

긴조 유지 씨(70세)는 백발을 바람에 날리며 말했다.
“농성은 10대의 젊은이부터 92세의 부인까지 나서서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8천 명이 지원하러 왔다. 8년 동안의 감시에는 3만 명이 참가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의 분노의 마그마에 불이 붙었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오키나와 현민 뿐만이 아닌, 일본 전 국민의 문제다. 나고시(市)의 주민투표에서는 과반수 이상이 기지반대였는데도 방위시설국은 반격을 노리고 있다. ”
9월 8일. 정부는 미군기지에서 배를 내어 해상에서의 시추조사를 강행했다.

<도시형 훈련시설>의 건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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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노코에 있는 미군기지의 철조망에 묶어놓은 리본과 현수막들

헤노코의 남쪽 긴초(町), 이게이 지구. 배후의 산지는 캠프 한센의 연습장으로, 5월부터 대량의 불도저가 움직이고 있다. 주택지로부터 300미터, 오키나와 자동차 도로부터 250미터의 지점에, 시가전용의 <도시형 훈련시설>을 미군이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에서는 실탄을 사용 건물에 돌입하는 훈련과, 실내의 적에 대항한 전투, 훈련탑으로부터 로프로 하강, 사격 등의 훈련이 거행되고 있다. 그러나 M16 소총의 사정거리는 3000여 미터나 된다. 이것을 사방을 향해 발사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게이구의 구장인 이케하라 마사후미 씨(47세)는 분개하면서 말했다.
“멀리 있는 사격장에서마저도 주택과 고속도로 휴게소로 총탄이 날라와 관통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까이서 실탄훈련을 한다면 이곳을 통과하는 관광버스도, 우리들의 생명도 모두 위험하다. 미군의 ‘제멋대로 뷔페식’ 횡포를 인정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자세는 용서할 수 없다.”
착공 다음날로부터 매일 아침, 미군에 대한 구민들의 항의가 계속되고 있다. 일찍이 온나촌(?\)과 괌에서의 건설을 현지의 반발로 단념한 위험시설. 건설을 서두르는 것은 다름아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침략에서 미군이 그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항의 못하는 고이즈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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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완시청 로비에서 열린 <헬기추락사고 항의 사진전>

일본 본토의 신문이 연일 올림픽보도로 끓어오를 동안, 오키나와의 신문의 제 1면은 항상 헬기사고관련 기사로 메워졌다. 고이즈미 수상은, 오키나와의 이나미네 지사와 기노완의 이하 시장이 상경해도, 여름휴가를 이유로 만나지 않았다. 반면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는 전화를 계속 걸었다.
그때, 오키나와의 대부분의 시정촌(市町?\)의회가 미군에 대한 항의를 경의하고, 후텐마기지의 반환과 일미지위협정의 개정을 촉구했다.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추락기와 동형의 헬기가, 추락원인도 감춰진 채 후텐마로부터 이라크를 향해 당당하게 날아올랐다.
일본은 바보취급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부는“지위협정이 있으니까”라며 미군에게는 주권침해에 대한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오키나와 민의련의 사회보장평화위원장이자 의사인 니시메 게이도 씨(55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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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중의 <도시형 훈련시설>. 앞부분의 고속도로에서 250미터도 안 되는 곳에 고압선의 철탑도 있다. (이게 지구)

“미군점령으로부터 일본 본토로 복귀했다고는 하나, 미군지배를 인정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아직 그대로 살아있는 오키나와 반환이었습니다. 불합리와 모순은 그로부터 생겨났고, 지금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후텐마 즉시반환이야말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오키나와의 현실을 보면, 일미지위협정의 재정비와 미군기지 철수는 즉시 실현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 수상은 9월 일찌감치, 오키나와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한쪽 손에 쌍안경을 들고 북방 영토 구경에 나섰다고 한다.

나카무라 고로 (포토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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