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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ュース・プレスリリース

베트남의 재활의료 사업 지원

1. 압도적으로 많은 2차 장애

오자키 노조무 / 교토 민의련 가미노진료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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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년 말 방문한 이래 , 거의 매년처럼 다니다시피 하게 된 베트남 . 당초에는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 ( 다이옥신 ) 와 베트남에 많은 선천성 장애와의 관련성을 조사해보고 싶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

그러나 범인은 확실하다고 생각하면서도 , 그 증거를 포착하는 것이 실제로 고역이었다 . 왜 피해자측이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고 ,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 횟수가 더해질수록 조사만으로 끝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 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당신들이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 ”라는 절실한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6 회 째가 되던 2002 년부터는 < 베트남의 고엽제를 조사하고 장애자의 의료와 재활치료를 지원하는 모임 > 이 교토 민의련 의사가 중심이 되어 구체적인 지원에 착수했다 . 가장 큰 변화는 이학요법사가 동행한 것이었다 . 타이닌성 ( 省 ) 이 벌인 지역건강 실태조사와 지역재활치료 계획에 협력하는 형태로 , 기능장애가 있는 아이들에 대한 재활훈련을 지도했다 . 뻣뻣하게 굳은 아이들의 몸이 이학요법사의 손길로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 현지의 의료 스태프와 부모들은 놀라움과 함께 충전된 열의로 지켜보았다 .

그리고 작년 . 같은 타이닌성의 진민차우현 ( 縣 ) 을 방문 , 행정에 의한 지역재활치료사업의 일환으로 벌인 검진에 협력했다 . 멤버들도 확대되어 , 일본의 에히메 , 오카야마 , 오사카 등지로부터도 간호사 , 이학요법사가 참가했다 . 목적은 1) 진민차우현의 장애실태 파악 2)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에서 가능한 재택 재활치료 지도 실시 3) 현지 의료 스태프들과 교류 , 향후 지원의 구체화에 대한 논의였다 .

호치민 공항에는 < 평화마을 > 의 툰 소장이 마중나와 주셨다 . 호텔로 향하는 차안에서 곧바로 이번 조사지역에 대한 개요를 들었다 . 진민차우현은 베트남전에서 투쟁한 민족해방전선의 발상지로 역전의 용사를 다수 배출한 만큼 전투도 격렬했을 뿐더러 , 고엽제를 포한한 다수의 피해가 남겨졌다는 것이다 . 면적 약 6 백 평방킬로미터 , 교토시 정도의 토지에 약 10 만 명이 살고 있으며 , 그 가운데 약 5 천명 (5%) 이 장애를 지니고 있다 . 장애의 내역은 지체부자유 35%, 시력장애 20%, 청력장애 12% 등이었다 .

사흘 동안 베트남의 스태프들과 함께 약 4 백 명을 검진 . 검진한 사람의 4 분의 1 이 선천성 장애 , 4 분의 3 은 뇌혈관장애 , 포리오후유증 , 연령이 더해지면서 생겨나는 골변형질환 , 그리고 교통사고나 전쟁에 의한 외상의 후유증이었다 . 30 대에 뇌혈관 장애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 병이 난 후 의료나 재활치료가 충분했던 예는 거의 없고 , 그로 인해 장애를 지니게 되거나 , 나아가 이차적인 변형을 일으키거나 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그러나 스태프나 시설이 불충분한 가운데에서도 지역주민들을 교육하고 , 지금 있는 자원과 힘을 이용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 보고자 하는 굳센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

식생활의 개선 , 임신부터 산후까지 엄마와 아기의 보건지식 , 집에서 가능한 재활치료 , 만성질환의 정기적인 관리 등 , 우리들이 쌓아온 노하우가 베트남에서도 필시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 베트남 사람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 이러한 교류와 어드바이스를 계속 해나가야 할 것이다 . “재활치료시설을 앞으로 더욱 더 확충해나고 싶다”는 툰 소장의 바램을 우리 모두의 협력으로 실현시킬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2. 어머니에게도 어드바이스를

오시로 하루미 / 교토 민의련 중앙병원 이학요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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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치료 분야에서는 이학요법사 , 작업요법사를 합쳐 5 명이 참가했다 . 대부분 서로가 초면이었지만 , 호흡은 금세 들어맞았다 . 이틀째부터 한 구획이 할당되어 재활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되면 거기서 지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체기능을 평가 , 생활 조건과 상황을 듣고 , 문제점을 끌어내어 , 개선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 지도한 것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 스태프들 스스로 생각하면서 지도할 수 있었다 .

장애아동의 가정 방문도 12 건 . 위 사진의 여자아이는 여덟 살로 양쪽 하지의 마비가 심한데 , 출산시의 트러블이 원인인 뇌성마비로 사료된다 . 외동딸로 무척이나 사랑을 받는 이 아이는 여러 가지 기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 산 지 얼마 안 된 목발의 높이를 조절해주고 , 잡는 방법도 지도했다 .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비눗방울 놀이기구나 풍선이 한 몫을 톡톡히 했다 . 비눗방울 놀이로 긴장을 푸는 리플렉스의 시간도 가졌다 . 어머니에게는 아이가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 되도록 손을 사용하도록 하게 해달라는 어드바이스도 해드렸다 .

이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 중증이면서도 학교에 다니거나 , 경증임에도 교육의 기회가 없는 등 , 아이들의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 개개의 장애에 맞는 공적 장애아동 교육의 표준화 실시가 조속한 과제라 생각되었으며 , 재활치료 인재육성 면에 있어서도 계속적으로 지원해나가야 함을 느꼈다 .

3. 학생들도 “ 다시 오고 싶다“고

고노 리에 / 도쿄 민의련 의학생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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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의학생 2 명 , 간호학생 1 명도 참가했다 .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과 , 나을 수 있는 병임에도 낫지 못하는 많은 병들의 예를 직접 보았다 .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30 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 부흥은 어렵고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 빈곤함의 수위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

그러한 가운데 , 전력을 쏟는 베트남의 스태프들과 , 국경을 넘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자 하는 우리 스태프들에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학생들은 “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할 정도다 . 경험을 쌓아서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 다시 오고 싶다”고 했다 .

마지막 날에는 베트남의 < 전쟁유적박물관 > 에 갔다 . 베트남 병사의 시체를 한쪽 손에 들고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미군병사의 사진 , 어린 형제가 서로 감싸안고 비호하다가 미군의 총에 맞아 죽는 순간의 사진 등 …. 가눌 수 없는 분노가 복받쳐 올라 , 그냥 마구 눈물이 흘렀다 . 베트남 전쟁에서는 베트남인만 아니라 미국인도 희생되었고 , 그 몸과 마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 전쟁은 단지 군대가 철수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각인하게 되었다 .

미국은 이라크에서도 같은 과오를 반복하고 있다 . 열화우라늄탄과 같은 잔학한 병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고통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 죄 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전쟁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베트남을 뒤로하면서 그에 대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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